[조선일보]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를 제주 말로 통역하면? - 조선일보

제주 이주민 위한 실력 테스트‘제주살이 능력고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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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희 기자

입력 2022.11.19. 03:00업데이트 2022.11.22.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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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참가자들이 '제1회 제주살이 능력고사'를 치르고 있다. / 랄라고고


‘다음 중 제주 잔치 음식 궁합으로 적당하지 않은 것은?’

①돔베고기-간장 ②옥돔구이-빙떡 ③흑돼지 삼겹살-초장 ④생콩잎-자리젓.

제주를 좀 안다고 자부했지만 1번 문제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윷놀이’의 제주 방언을 묻는 문제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답은 넉둥베기. 지난 11일 오후 2시 ‘제1회 제주살이 능력고사 필기시험’이 진행된 제주시 ‘제주시소통협력센터’ 다목적홀은 대학수학능력시험장 못지않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주시소통협력센터가 주관한 이 시험은 제주에 거주하는 20~60대 이주민(정착 주민)이자 지역 혁신 활동 참여자, 토박이 주민 30여 명이 응시했다.

총 20문항에 시험 시간은 20분, 100% 객관식에 사지선다형이었지만 최고 점수는 87점. 제주 토박이이자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마저도 90점을 넘지 못하는 예상 밖 결과가 ‘속출’했다. 제주살이 3일 차 ‘새내기’ 응시생은 50점으로 겨우 ‘반타작’. 채점 종료 후 참가자들 사이에선 “수능의 추억이 떠올라 재미있었다”면서도 “만만하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제주 토박이로서 점수를 보니 참담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행사를 기획·진행한 콘텐츠 디자인 회사 ‘랄라고고’의 조인래 대표는 “귀농·귀촌 교육 대신 제주살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기획한 시험인데, 참가자들이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 놀랐다”고 했다.

◇언어·사회·경제 등 5개 영역서 출제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시험도 진행됐다. 사전 신청 참가자들에게 온라인 시험장 초대 링크가 휴대전화 문자로 전송됐다. 가상의 교실에 입실하니 두꺼운 돋보기 안경과 가발을 눌러 쓴 ‘출제위원장’이 화면에 등장했다. 총 25문항에 시험 시간은 20분. 영화 ‘친구’ 속 명대사인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를 제주어로 ‘통역(니네 아방 뭐햄시니?)’하는 언어 영역 문제, 제주도의 버스 이용 팁과 쓰레기 배출 시스템을 묻는 생활 밀착형 문제를 비롯해 영어 대화를 제주어로 바꾸는 고난도 문제들이 출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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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이주민들이 이주 후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문제집 형식의 실용서 '제주살이 능력고사'. 지난 11일 치러진 '제1회 제주살이 능력고사'의 출발점이 된 책이기도 하다. / 랄라고고

시험 종료 후엔 곧바로 채점과 해설이 이어졌다. ‘7년 차 제주 며느리’가 정답을 불러주며 해설할 때마다 앱의 실시간 채팅 창에는 “맙소사!” “아깝다”는 탄식이 오갔다. “바로 재수에 들어간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제주 이주민이 다수 참가한 온라인 고사 평균은 76점. 1등은 84점으로, 가파도 이주민인 곽상훈(30)·신현정(27)·심나희(32)씨 등 5인으로 구성된 ‘위대한 백수’팀이 차지했다. “오프라인 필기시험을 보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어 포기한 대신 이웃들과 팀을 이뤄 온라인 시험에 응시했다”는 곽상훈씨는 “오늘의 결과는 집단 지성의 승리”라며 자축했다. 곽씨는 “나름 ‘열공’ 했는데도 제주의 역사 영역 문제들은 난도가 높아 놀랐다”며 “1등 선물로 받는 20만원 상당의 흑돼지 세트로 가파도 어르신들과 흑돼지 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험 후 80점 이상 참가자들에겐 문자로 ‘합격증’이 전송됐다.

◇제주 정착 주민들이 출제, 토박이가 감수

‘제1회 제주살이 능력고사’는 랄라고고가 지난달 출간한 여행서이자 실용서 ‘제주살이 능력고사’(솔앤유)에서 출발했다. 조인래 대표는 “‘제주 드림’을 꿈꾸며 제주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역(逆)이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제주살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깨알 팁을 전하고자 능력고사를 기획, 예상 문제집을 펴내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제주 정착 주민 기본 계획 수립 연구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 4명 가운데 1명 꼴로 제주를 떠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제주살이 능력고사 출제위원들은 제주살이 9년 차에 접어든 조 대표를 비롯해 제주 이주 N년 차인 랄라고고 편집자·디자이너 등 이주민 5인으로, 그간 제주살이 경험에서 느꼈던 시행착오와 실생활에서 얻은 팁들을 묶어 실전 문항으로 구성했다. 조 대표는 “여기에 제주 토박이와 제주 전문가의 날카로운 감수로 문제의 객관성을 확보했다”며 “11일에 치러진 제주살이 능력고사는 90% ‘제주살이 능력고사’ 예상 문제집에서만 출제했다”고 설명했다.

예상 문제집은 1교시 ‘사회·생활·문화’ 영역부터 2교시 ‘자연·환경·활동’ 영역, 3교시 ‘언어’ 영역, 4교시 ‘산업·경제’ 영역, 5교시 ‘역사·신화·지리’ 영역으로 나눠 총 150문항을 수록했다. 각 문항에 대한 정답과 정착 주민 시점 설명 자료를 더해 제주살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제주 여행객, 이주 예정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문제와 설명도 눈에 띈다. 제주 오일장에 대한 설명을 묻는 문항 해설지엔 제주 오일장 정보를 싣거나 제주 전통 가옥에서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의 상황별 의미, 제주 장례 문화 등에 대한 문제와 해설도 곁들였다. 조 대표는 “가볍게 ‘재미’에서 출발했지만, 출제를 하고 해설지를 준비해 책으로 엮다 보니 구술 채록, 논문, 통계 자료까지 들여다봐야 했다”며 웃었다.

◇‘제주살이’ 실기 편도 진행

오는 20~26일엔 제주관광공사와 함께하는 ‘제주살이 능력고사’ 실기 편도 진행된다. 사전 신청으로 선발된 참가자 10명이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일주일간 미션을 수행하며 제주살이 실전 경험을 쌓는 시험이다. 예상 미션은 ‘이장님 댁 반려견과 마을 산책하기’ ‘해녀 물마중(짐을 대신 들어주는 마중) 해주기’ 등이다. 조 대표는 “1회 제주살이 능력고사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시험은 조용히 치러졌지만, 참가자들이 즐기며 제주에 대해 알아간 것에 의의를 둔다”며 “앞으로 제주 문화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주살이 능력고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제주살이 능력고사’ 셀프 테스트를 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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